사이고사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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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고사쓰(西鄕札)이란,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 세이난 전쟁(西南戰爭) 중에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이끌던 사이고군(사쓰군薩軍)에 의해 군비 조달 목적으로 발행되었던 전시용 정권(証券)이자 군표(軍票)이다. 일본의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의 동명의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개요
[편집]세이난 전쟁이 시작된 1877년(메이지 10년), 사쓰마(薩摩) 지역의 상인들로부터 군비를 조달받을 필요가 있었던 사족(士族)들의 상사(商社)인 '고토에시(承惠社)', '부이쿠시(撫育社)' 등을 통해 고토에시사쓰(承惠社札) 6만 엔이 조달되었는데, 고토에시사쓰에는 5엔ㆍ1엔ㆍ반엔의 세 종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 후, 가고시마와의 연락도 끊어지고 군자금 부족에 빠진 사이고군이 1877년에 발행한 것이 이른바 '사이고사쓰'였다. '사쓰(札, 종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천을 써서 만든 '포폐(布幣)'로서, 한랭사(寒冷紗)라는 얇은 비단을 두 장 겹치고 그 사이에 종이를 끼워 견고하게 만든 것이었다. 통용 기간이 3년이었던 불환지폐로 10엔(담황색)ㆍ5엔(쥐색)ㆍ1엔(연노란색)ㆍ50전(담황색)ㆍ20전(누런색)ㆍ10전(남색)의 여섯 종이 있었지만 발행 초부터 돈으로서의 신용이 부족했고, 그나마 소액권은 다소 유통된 것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0엔ㆍ5엔 같은 고액권은 사이고 다카모리 자신의 신망(내지는 사이고군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실효지배하던 지역 내에서 무리하게 통용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사이고사쓰는 사이고군의 패배와 함께 그 가치를 완전히 잃었고 메이지 정부로부터의 보상도 없었기 때문에, 사이고사쓰를 많이 맡은 상가가 몰락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세이난 전쟁 기간 동안 사이고군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다만 고토에시사쓰는 이듬해인 1878년(메이지 11년)에 정부에 의해 상환되었다.
영향
[편집]사이고사쓰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신망에 힘입어 일부 사람들로부터는 '부적'으로서 귀하게 여겨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메이지 정부에 의해 몰수되어 폐기처분되었으므로 현존하는 것은 적다(대신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레어아이템으로 고액으로 거래되고 있다). 고토에시사쓰도 5엔권은 현재 남아있지 않은 데다 1엔권ㆍ반엔권의 2종에 대해서도 현존 수량이 적어 지금도 일본에서는 그 화폐에 매겨진 금액에 상당하는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1951년 「주간 아사히」에서 공모한 '백만 인의 소설'에서 이 사이고사쓰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단편소설로서 소설가로 데뷔하였는데, 이 소설은 공모전에 응모한 992편의 소설 가운데 3등으로 꼽혔다고 한다(원래는 1등이었지만 세이초 자신이 아사히 신문사의 직원이었으므로 3등으로 밀려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