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1922년)
김종원 | |
출생일 | 1922년 7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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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경산 |
사망일 | 1964년 1월 30일 | (41세)
김종원(金宗元 1922년 7월 8일~1964년 1월 30일)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해방후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생애
[편집]1946년 1월 15일 국방경비대 제1연대 A중대 소대장이었으며, 1948년 10월 19일 발발한 여순사건을 토벌하고자 부산에 주둔하던 5연대 1대대 대대장으로서 참여했다.[1]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근무 당시 독립군과 그들을 지지하던 조선인들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그는 여수에서도 시내에서 잡아오는 가담자로 지목된 시민들을 다른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본도로 목을 치고 지치면 권총으로 쏴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49년 5월 김종원은 신성모의 추천으로 계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한국전쟁중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직후 사건 조사와 관련된 국회의 방문 조사 때 국군을 빨치산으로 가장하여 습격해 조사활동을 중단시켰고 이 사건으로 51년 9월 군법회의에 회부됐고 재판 결과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바로 대통령 특사로 사면받고 풀려났으며 1956년 5·15 대통령 선거 뒤 부정선거의 공을 인정받아 내무부 치안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60년 5월, 4월 혁명 뒤 임흥순과 이익흥 등과 함께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61년 12월 당뇨병으로 병보석을 받아 1964년 1월 30일에 사망했다.
영화
[편집]-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 : 독립영화 (감독 구본환, 95분)[2]
- 김종원은 구본환 감독의 이모 할아버지이다.
사후
[편집]일본군 장교로 복무한데다가 조선인들과 항일 운동가들을 악랄하게 탄압한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김종원을 연기한 배우들
[편집]각주
[편집]- ↑ 내가 겪은 10.19사건, 김계유
- ↑ 잔인한 학살자 '백두산 호랑이',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