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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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준(崔宗峻, ? ~ 1246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최유청(崔惟淸)의 손자이자 최선(崔詵)의 차남이며, 『고려사』 「최유청전」에 자신의 열전도 들어 있다.
생애
편집1216년(고종 3) 우군지병마사(右軍知兵馬事), 이듬해[2] 후군지병마사(後軍知兵馬事)에 임명되어 거란과 싸웠다.[3]
1222년(고종 9) 좌승선(左承宣)으로 있을 때, 지정된 날짜가 아닌 날에 자기 아들을 국자시(國子試)에 응시시키려고 했으나 국자정록(國子正錄)이 이를 거절했다.
이에 최종준은 당시 무신 집권자였던 최우(崔瑀)에게, “왕에게 자기 아들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청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여 아들은 끝내 시험에 응시했고, 이 일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1]
1226년(고종 13) 의방서(醫方書)인 『어의촬요방 御醫撮要方』 2권을 편찬했고,[4] 1227년(고종 14)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이듬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또 그 이듬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쳤다가[5], 문하시중(門下侍中)에까지 이르렀다.
1242년(고종 29) 퇴직을 청했으나, 왕이 이를 윤허하지 않고 궤장(几杖)을 내렸으며, 1246년(고종 33) 졸했다.[1]
시호는 선숙(宣肅)이다.[6]
평가
편집『고려사』는 최종준에 대해 「최유청전」에서 이렇게 평했다.
“ | 사람됨이 엄중(嚴重)하고 말수가 적었으나, 음악과 여색을 즐겼으며, 거처(居處)와 음식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웠다. | ” |
가족 관계
편집※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부분은 『고려사』가 출처이다.
- 증조 - 최석(崔奭, 1026년 ~ 1099년) : 검교태부(檢校太傅)·수태보(守太保)·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史)·판이예부사(判吏禮部事)·상주국(上柱國)·창원현개국자(昌原縣開國子)·식읍(食邑) 500호, 예숙공(譽肅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