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여
위수여(韋壽餘: 미상∼1012년 5월 19일(음력 4월 26일)[1])는 고려의 무신·정치인이다. 강화 위씨(江華韋氏)의 시조이며, 시호는 안공(安恭)이다.
생애
편집신라 말 고려 초 혈구진(穴口鎭 : 오늘날 인천광역시 강화군)지역의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강화 위씨(江華韋氏)로, 국왕의 측근세력으로 출세한 관료이다.[2] 성품이 단아하고 성실해 법도를 잘 지켰다.[3]
광종(재위 949~75년) 때부터 사선(司膳)으로 오래 있다가[3] 976년(경종 원년)에는 원보(元甫)로 있었고, 지어주사(知御廚事)로 임명되었다.[4]
목종 이후 계속 승진해 1009년(현종 즉위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5]
1011년(현종 2년)에 나이가 많아 물러나고자 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6]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크게 등용하고자 해 1012년(현종 3년) 2월에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강화현개국자(江華縣開國子)로 봉하고 식읍 5백 호를 주었다.[7] 같은 해 4월 26일(양력 5월 19일)에 사망했다.[1]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안공(安恭)이다.[3]
전기 자료
편집- 《고려사》 권94, 〈열전〉7, 위수여
참고 자료
편집-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이수건, 《한국 중세 사회사 연구》, 일조각, 19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