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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균

대한민국의 야구인

신용균(申鎔均[1], 平山鎔均 1938년 10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이다. 전직 한화 이글스의 불펜코치이다.

신용균
Sin Yong-Kyun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38년 10월 13일(1938-10-13)(86세)
출신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
신장 172 cm
체중 8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8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1988
마지막 경기 1997
획득 타이틀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아선수권 1963년 서울
메달 기록

1938년 일본에서 태어나 에히메 현립 야와타하마고(愛媛県立八幡浜高等学校)를 졸업한 뒤 카메라 회사인 일본 야시카에서 사회인 야구를 했다. 언더핸드 투수로 1963년 국내에 들어와 싱커로 선풍을 일으켜‘싱커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있다.[2] 1963년 제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 사상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꺾은 최초의 일이었으며, 이 대회에서 신용균은 최우수선수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3] 2012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3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한편, 1991년쌍방울 부회장 겸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한[4] 이용일 전 KBO 총재특보의 부름을 받아 1992년 시즌 뒤 3년 계약 형식을 통해[5] 쌍방울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용균과 똑같은 '일본통'이었던[6] 이용일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은 김인식 초대감독이 계약 종료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영입과정에서 한동화 코치와 불화를 보여[7] 결국 1년 만에 해임됐으며 후임으로는 본인(신용균)과 같은 재일동포였던 김성근 전 삼성 감독이 후임 물망에 올랐으나 계약 조건과 코치선임문제로 불발됐고[8] 한동화 코치가 2년 계약 형식으로[9] 감독 승격했지만 매년 유망주들을 쌍방울과 1992년 11월 3일부터 자매결연을 맺은[10] 일본프로야구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가을 캠프에 보내던 관례를 거부하는 등[11] 김인식 창단감독과 마찬가지로 미국야구 신봉자라 소위 '일본통'이었던 이용일 당시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결국 1995년 시즌 연패를 반복하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같은 해 5월 19일 감독에서 해임됐고 이 과정에서 사장 단장이 동시에 해임되기도 했다[12]. 아울러, 쌍방울에서 젊은 선수들과 코치를 야쿠르트 가을캠프에 보내는 관례는 소위 '미국통'인 한동화 감독 부임과 함께 1993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1997년부터 재개되어[13] 1998년까지[14] 지속됐다. 이와 더불어, 신용균 감독 부임 과정에서 그 동안 하와이를 전지훈련지로 했던 것이 1993년부터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시로 전지훈련지가 바뀌었고[15] 1990년 태평양 이후[16] 두 번째 구레시 전지훈련이기도 했으며 신용균 감독 후임이었던 한동화 감독은 매년 유망주들을 쌍방울과 1992년 11월 3일부터 자매결연을 맺은[17] 일본프로야구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가을 캠프에 보내던 관례를 거부하는 등[18] 김인식 창단감독과 마찬가지로 미국야구 신봉자라 소위 '일본통'이었던 이용일 당시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1995년에는 구레시에서 호주 브리즈번(1차) 일본 미야자키(2차)로 전지훈련 장소가 바뀌었으며[19] 1993년 시즌 후 2년 계약으로 취임한[20] 한동화 감독은 1995년 시즌 연패를 반복하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같은 해 5월 19일 감독에서 해임됐고 이 과정에서 사장 단장이 동시에 해임되기도 했으며[21] 재일동포 김성근 감독이 10월 19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취임했고[22] 쌍방울에서 젊은 선수들과 코치를 야쿠르트 가을캠프에 보내는 관례는 소위 '미국통'인 한동화 감독 부임과 함께 1993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1997년부터 재개되어[23] 1998년까지[24] 지속됐다. 한편, 쌍방울은 앞서 본 것처럼 1995년 10월 19일부터 김성근 감독이 3년 계약 형식으로 부임하면서[25] 전지훈련 장소도 일본 오키나와로 바뀌었는데[26] 김성근 감독은 첫 해부터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공로를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1998년 10월 23일부터 2년 재계약했으나[27] IMF 사태 여파로 모기업이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구단이 '선수 팔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어 팀 주축 선수였던 박경완, 김현욱, 김기태, 조규제 등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타 팀으로 떠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쌍방울은 1998년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하여[28]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다른 경비를 대폭 줄여서라도 해외훈련은 갔다와야 한다"는 김성근 감독의 지론 아래[29] 1999년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김성근 감독은 김기태 김현욱 등 주전들을 트레이드로 잃어버린 뒤 그 해 전반기 성적 17승 59패 5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급속한 전력약화를 겪어 전반기 종료 후 해임됐다[30]. 결국 김준환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은 뒤 1999년 시즌 후 쌍방울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나[31] 쌍방울이 인수가 아닌 해체 후 재창단 형식을 취해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수석코치가 되는 데 그쳐 프로 야구 팀 감독으로는 단 1경기도 지휘하지 못했다. 난항 끝에 김준환은 쌍방울 해체 후 2000년 1월 창단된 SK 와이번스의 창단 수석코치를 맡았으나 같은 해 말 단행된 '쌍방울 색 지우기' 프로젝트에 따라[32] 해임되었으며 김준환 외에도 1999년김준환이 쌍방울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과정에서[33] 쌍방울 코치로 부임했지만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새로 창단된 SK 와이번스에서 코치를 역임한 함학수 김성현 박철우 이건열 코치와 쌍방울 시절부터 몸 담아 온 박상열 김만후 코치가 같은 시기 팀을 떠나야 했고 이외에도 쌍방울에서 그대로 받은 선수들 위주로 대대적인 구조 정리가 단행됐으나 쌍방울이 SK에 선수들을 넘기려면 전지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 아래 쌍방울은 2000년 2월 7일부터 3월 7일까지 하와이로 전지훈련을(92년 이후 8년 만) 떠났으며[34] 최태원 김원형 성영재 조원우 등 당시 쌍방울의 주축 선수들이 여전히 선수협 고수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터라 애를 먹었고 김호 양용모 박진석 김기덕 장재중 손차훈(99년 말 현대에서 방출된 뒤 쌍방울에 입단했으나 이 팀 해체 후 새로 창단한 SK 이적) 김원형 조원우 심성보 등이[35] 선수협에서 탈퇴하여 최태원 김광현(99년 시즌 후 이계성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음에도 이 팀 해체 후 새로 창단한 SK 이적) 성영재 박재용이 당시 선수협에 잔류했는데[36] 김호 성영재2000년 시즌 중 해태로 이적했고 장재중2001년 LG로 이적했으며 박진석 심성보 김광현 박재용 등이 2000년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 첫 해인 2000년에는 초창기 선수단의 주축이었던 쌍방울 선수들에 대한 신분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37] 시범경기에 불참했으며 선수협 파동 때문에 두산(OB 포함)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38] 강병규가 같은 해 3월 23일 SK로 현금 트레이드됐고 SK는 같은 날 강병규 외에도 지역연고(인천) 출신인 권명철 김충민 장광호와 인천 출신이 아니었던 김태석 김종헌 송재익[39] 데려왔으며 시즌 전 선수협 문제로 전준호와 갈등을 빚은 데다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설 뿐 아니라 부상 때문에 개막전부터 출전을 하지 못한 프랜차이즈(인천) 출신 김경기를 현대에서 2000년 7월 현금 2억 5000만원에 트레이드로 데려왔다[40].

각주

편집
  1. 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
  2. 김동민 (2005년 2월 11일). “[야구100년 인물100인]28. 사상 첫우승 영웅 '싱커달인' 신용균”. 스포츠서울. 2011년 10월 2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정유진 (2011년 4월 19일). “스포츠 첫 특종 신용균 전 감독 인터뷰”. 일요신문. 2011년 10월 26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연합 (1991년 11월 16일). “李容一 KBO총재특보, 쌍방울 부회장 영입”. 연합뉴스.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5. “스포츠 게시판”. 조선일보. 1992년 9월 26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6. 여현호 (1993년 8월 10일). “한국체육 이대로 좋은가 (58) 프로선수 빛과 그늘〈9〉툭하면 해임'파리목숨'감독”.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7. 김경윤 (2015년 7월 31일). “[시공초월 라이벌]쌍방울 VS 한화, 만년 꼴찌 탈출기”. 스포츠서울.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8. “프로야구”. 문화일보. 1995년 9월 12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9.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중도일보. 1995년 5월 17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0. “프로야구 단신”. 연합뉴스. 1992년 11월 2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1. “<감독해부>8.끝 쌍방울 한동화”.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2. “쌍방울,사장.단장.감독 경질”. 연합뉴스. 1995년 5월 16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3. 연합 (1997년 11월 7일). “<프로야구소식> 쌍방울,7일부터 야쿠르트와 훈련”.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4. 연합 (1998년 11월 2일). “<프로야구소식> 이동수 등 야쿠르트 캠프 참가”.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5. 김준호 특파원 (1993년 2월 25일). “프로야구단 海外(해외)전훈 점검 (3) 쌍방울 승률5할"트라이". 경향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6. 신임호 (1990년 1월 17일). "올 優勝(우승)은 우리의 것". 매일경제.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7. “프로야구 단신”. 연합뉴스. 1992년 11월 2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8. “<감독해부>8.끝 쌍방울 한동화”.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9. 윤희상 (1995년 1월 9일). “프로야구 땀에 젖은「겨울잠」”. 동아일보.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0.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중도일보. 1995년 5월 17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1. “쌍방울,사장.단장.감독 경질”. 연합뉴스. 1995년 5월 16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2. “쌍방울 金(김)성근감독 선임”. 동아일보. 1995년 10월 20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3. 연합 (1997년 11월 7일). “<프로야구소식> 쌍방울,7일부터 야쿠르트와 훈련”. 연합뉴스.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4. 연합 (1998년 11월 2일). “<프로야구소식> 이동수 등 야쿠르트 캠프 참가”. 연합뉴스.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5. “쌍방울 金(김)성근감독 선임”. 동아일보. 1995년 10월 20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6. 송채수 (1997년 1월 18일). “92년 일본 운젠화산 폭발 한화 시마바라캠프 악몽”. 경향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7. “쌍방울 김성근감독, 연봉 8천만원 재계약”. 영남일보. 1998년 10월 24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8. 이용욱 (1998년 2월 17일). “동계훈련 마감 쌍방울 김성근 감독 "팀전력 구멍 최악의 해". 경향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9. 이기환 (1998년 12월 31일). “IMF라도 쓸돈은 써야지…프로야구 해외전지훈련 러시”. 경향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0. 이병학 (1999년 7월 16일). “김성근 쌍방울감독 해임 구단 성적부진 책임 물어”. 한겨레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1. 백기곤 (1999년 12월 9일). “김준환감독등 코치진 확정 쌍방울레이더스”. 전북일보.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2. 천병혁 (2000년 10월 19일). “<프로야구소식> SK, 코칭스태프 대개편”. 연합뉴스.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3. 백기곤 (1999년 12월 9일). “김준환감독등 코치진 확정 쌍방울레이더스”. 전북일보.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4. “선수협 가입 쌍방울 선수 9명 전훈 참가”. 경인일보. 2000년 2월 8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5. 신수건 (2000년 2월 8일). “쌍방울 김원형 등 3명 선수협 탈퇴”. 국제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6. 신수건 (2000년 2월 8일). “쌍방울 김원형 등 3명 선수협 탈퇴”. 국제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7.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시범경기 불참”. 부산일보. 2000년 3월 22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8. 신수건 (2000년 3월 24일). “강병규 -두산보호선수명단서 제외 SK행”. 국제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39. 신수건 (2000년 3월 24일). “강병규 -두산보호선수명단서 제외 SK행”. 국제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40. “현대 김경기 SK 트레이드”. 국제신문. 2000년 7월 8일.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전임
김인식
제2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1993년
후임
한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