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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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공주
慶安公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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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공주 | |
이름 | |
별호 | 경안궁주(慶安宮主)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93년 |
사망일 | 1415년 6월 8일(양력) (향년 23세) |
부친 | 태종 |
모친 | 원경왕후 민씨 |
배우자 |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 |
자녀 | 2남 1녀
권담(權聃) · 권총(權聰) · 권씨 |
능묘 | 권규 · 경안공주묘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덕평리 산9-1 |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년 ~ 1415년 6월 8일(음력 4월 22일))는 조선의 공주로, 태종의 3녀이자 적3녀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생애
[편집]경안공주는 1393년(태조 2년), 당시 정안군이었던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민씨(원경왕후)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경안궁주(慶安宮主)로 책봉되었다.
1403년(태종 3년) 12월 18일, 권근(權近)의 아들이자, 이존오(李存吾)의 외손자인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1]
1415년(태종 15년)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楊弘達)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그 신분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2] 이후 경안공주의 남편인 권규 마저 요절하였기 때문에 경안공주의 자녀들은 궁에서 길러졌다.[3]
경안궁주의 졸기
- 경안궁주(慶安宮主)가 졸(卒)하였다.
- 궁주(宮主)는 임금의 셋째 딸인데, 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예뻤으며,
- 총명과 지혜도 보통 사람과 달라서, 임금과 중전[兩宮]의 사랑을 한데 모았었다.
-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에게 시집가니,
- 부덕(婦德)이 있어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 죽으니 나이가 23세로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 임금이 애도하여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였다.
- 집안이 가난하여 대·소렴(大小斂)에 소용되는 물건이 부족하므로,
- 명하여 상의원(尙衣院)의 의대(衣襨)로 부의(賻儀)를 주게 하고,
- 장사는 종친(宗親)의 상등례(上等禮)를 쓰게 하였다.
- 권규가 불사(佛事)를 행하지 못하게 청하여, 한결같이 《예경(禮經)》의 제도에 따랐다.
- 궁주와 충녕대군(忠寧大君, 세종)은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아서,
- 궁중에서 그 어짊을 함께 일컬었다.
- 궁주는 매양 충녕의 덕행과 기량이 날로 이루어짐을 감탄하였으니,
-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 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 제간공 권규 묘역 - 경기도 기념물 제214호
각주
[편집]-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12월 18일 (신묘)
셋째 딸 경안궁주를 권근의 아들 규에게 하가시키다 - ↑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4월 6일(병술)
- ↑ 《성종실록》 114권, 성종 11년(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2월 11일 (신유)
지중추부사 권총의 졸기
지중추부사 권총(權聰)이 졸(卒)하니, 철조(輟朝) 하고 부의(賻儀)와 조제(弔祭)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권총은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으로,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의 아들이다. 태종(太宗)의 외손[女孫]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늘 궁중(宮中)에 들어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