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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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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
光山金氏
나라한국
관향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봉산면
시조김흥광(金興光)
원시조김알지(金閼智)
주요 인물김태현, 김한로, 김국광, 김겸광, 김구, 김계휘, 김덕령, 김장생, 김집, 인경왕후, 김익희, 김익겸, 김익훈, 김익경, 김만기, 김만중, 김일경, 김진규, 김춘택, 김상복, 김영철 ,김철수, 김동한, 김수환, 김춘수, 김우중, 김용준, 김대중, 김완주, 김하중, 김희중, 김장수, 김용옥, 김황식, 김효석, 김용익, 김재균, 김우남, 김선수, 김선동, 김태년, 김용태, 김한규
인구(2015년)926,316명 (8위)
비고광산김씨 대종중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광주광역시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이다.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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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흥광(金興光)은 남북국 시대 신라 말기 나라가 어지러워 장차 국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무진주 추성군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시조 김흥광은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광산김씨 정유대동보》, 《신라김씨선원보》, 《계림대보》, 《경주김씨보》 등에는 신라 45대 신무왕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위 일설에 대해 현존하고 있는 광산김씨 최고의 족보인 정묘대보(1747년 간) 시조 김흥광 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구보의 제본에 이르기를 혹 헌강왕의 제3자라 하고 송사회강 및 최치원의 납정절표에는 헌강왕은 일자가 있으니 요라 하였고 경주김씨 보에 의하면 신무왕자라고 하나 무슨 근거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신라왕자로 하고 유허비를 세운다(舊譜諸本云 或云憲康王第三子而宋史會綱崔致遠納旌節表云憲康有一子嶢慶州金譜云神武王子未知何據今依諸本書以新羅王子○遺墟立碑)

김길(金吉)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자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후 조부의 작호(爵號)이자 세거지(世居地)인 광주 광산(光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며, 후손들 중 평장사(平章事:정2품)가 8명이나 배출되자 사람들이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평장동(平章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은 지금까지도 남아 평장리(平章里)로 불리고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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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63명(문과 갑과 장원급제자 12명),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을 배출했다.[1]

김장생(金長生)

양간공파 대사간 김극뉴(金克忸)의 현손인 김장생(金長生)이 문묘에 종사되었고, 그의 아들 김집(金集)은 문묘종묘에 배향되었다. 김장생 후손 중에 대제학이 7명이나 배출되었다.[2] 김장생의 증손자인 김만기(金萬基)와 김만중(金萬重) 형제가 대제학에 올랐다. 김만기의 아들 김진규(金鎭圭)도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고, 그의 아들 김양택(金陽澤)도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냈다.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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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는 크게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서직장공파' 5파로 분류한다. 양간공파 후손들이 70%로 제일 많고 현달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 문정공파(文正公派) - 15세 김태현(金台鉉)
  • 문숙공파(文肅公派) - 14세 김주정(金周鼎)
  • 양간공파(良簡公派) - 14세 김연(金璉)
  • 낭장공파(郎將公派) - 14세 김규(金珪)
  • 사온직장공파(司醞直長公派) - 16세 김영(金英)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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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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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동항렬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50세 51세 52세 53세 54세 55세 56세 57세 58세
익(益) 만(萬) 진(鎭) 口택(澤) 상(相) 口기(箕) 재(在) 口현(鉉) 영(永) 口수(洙) 용(容) 口중(中) 선(善) 口순(淳) 동(東) 口환(煥) 규(奎) 口용(鏞) 연(淵) 口식(植) 형(炯) 口곤(坤) 수(銖) 口홍(洪) 종(種) 口헌(憲) 중(重) 口흠(欽) 태(泰) 口걸(杰) 병(炳)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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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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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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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과 276명, 생원 350명, 진사 402명 등을 모두 합치면 1,028명이다.
  2. 문형으로 불리는 양관대제학은 7명이나,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김한로를 포함하면 8명이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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